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1 전차 (문단 편집) == 개발 과정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44NN2uKHXbo)]}}} || || '''K-1 전차의 발전 과정 그래픽''' ||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은 미국이 대한민국 등의 국가에 대한 군사적인 보장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고, 1971년에는 주한 미군 2만 명이 철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대한민국에게 독자적인 국방과 자체적인 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상기시키게 된다. 이에 맞춰 방위세를 신설해 1974년부터 군 전력 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또한 [[K2 소총]]을 비롯한 각종 무기에 대한 연구 사업도 같은 시기에 진행된다. 한국형 전차 개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초 열악한 당시 대한민국 국군에 비해 이미 북한군은 전차의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T-55]], [[T-62]] 전차 보유 대수도 1,600대에 이른다는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7월 국방부에 한국형 전차의 개발을 지시했다. 사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국군은 미군의 반대로 전차 대신 [[M8 그레이하운드]] 27대 정도만 공여받은 상태였고, [[포천 전투]]를 시작으로 [[T-34-85]]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거나 격파할 수단이 없어 낙동강까지 하염없이 밀려나던 참상은 대한민국 국군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이에 국방부는 1976년 12월 국방부 내에 전차관리사업단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전차의 개발은커녕, 라이선스 생산조차 해본 적도 없는 국가에서는 완전한 신형 전차의 개발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전차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낮은 장갑차조차도 [[K200]] 자체 개발과 [[M113]] 직도입 중 수많은 갈등이 있었으며 장갑차 사업단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K200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물량이나 질적 면에서 뒤처지게 생긴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군 기갑 전력에 대응해 기존에 사용 중인 [[M48 패튼|M48A1과 M48A2C]]를 [[M60 패튼|M60 전차]]에도 사용한 750마력의 신형 디젤 엔진, 신형 사격통제장치 등을 장착하는 등의 전차 개량을 시작했다. 물론 모든 M48A1과 M48A2C를 M48A5K로 개량하는 것은 1970년대의 당시 열악한 예산과 군수 호환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능했다. 그 결과 90mm 강선포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신형 디젤 엔진이나 사격통제장치 등을 장착한 개량형을 사용하는 M48A3K가 등장했으며, 또한 90mm 강선포를 105mm 강선포로 교체하면서 각종 신형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면서 개량이 완료된 것이 M48A5K이다. 그 결과 2018년 현재도 [[M48A3K / A5K|M48A3K와 M48A5K]]가 여전히 운용되고 있지만 그나마 2020년 초반에는 M48A3K는 전량 퇴역 예정이며 M48A5K는 K-2 흑표 등의 추가 양산 상황에 따라 조기퇴역하거나 더 운용될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M48 전차 성능 개량 사업은 국방부의 전차사업관리단이 사업을 관리하고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 지원하에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주도로 추진됐는데, 이는 한국형 전차의 개발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차후 한국형 전차의 양산에 필요한 전차 체계의 조립 및 생산기술을 축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미국에게 [[M60 전차]] 공여 및 라이선스 생산을 요청하면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M60 전차 130대를 공동생산하고 1980년대 이후 독자적인 한국형 전차를 개발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현실적 위협이 낮다는 이유로 M60 전차 라이선스 생산을 거부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M60A1 계열을 신형 M60A3으로 교체하고 있었는데 당시 주력이던 M60A1 RISE는 방호력을 제외하면 M48A5K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고 알려져 있다. M60 전차 라이선스 생산을 거절당한 대한민국은 이후 [[독일]]의 기술협력을 받아서 전차를 개발하려고 했는데 당시에 [[레오파르트 2]]가 출시되긴 했으나, [[NATO]] 동맹국 이외의 수출이 가능할지 확신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레오파르트 1]] 개량형쯤 되는 신형 전차를 개발하려고 했다. 이러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놀란 미국은 신형 전차 개발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군수사업에서 한국은 큰 사업장이었다. 그런데 그 한국이 전차를 자체 개발하겠다고 나서고 독일이 그를 돕는다면, 차후에도 한국은 기술 개발이나 장비 구매에서 미국이 아닌 타국제를 우선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독일과 전차 개발 측면에서 협력했다면 추후 차기 전차는 독일과 진행하려고 할 게 뻔했기에 큰 시장을 놓치기 싫었던 미국이 중간에 끼어들어 독일과의 사업에 훼방을 놓은 것이다.] "ROKIT"(Repulic Of Korea Indigenous Tank, 한국형 차기 전차) 사업을 하게 된다. 이 제안 직전에는 미국 측에서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대한민국에 제공한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다만 위 서술은 현재 과장이나 왜곡이 심하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 국군 낚시 전설의 영향이 강한데, 정치적 결정과는 달리[* 당시 유신 시절 미국과의 마찰로 인해 자주국방 정책 진행과 함께 프랑스의 미라주나 이스라엘제 크피르 등 제3국의 전투기들을 알아보고 있었으나 이 역시 공군의 반대 등 여러 요소로 무산됐다. 다만 [[엑조세#s-6.1|엑조세]] 대함 미사일처럼 제3국의 장비 도입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군에서는 기존 무기 체계와 비교하면 낯선 독일제 전차의 군수 체계와 교육 및 호환성(유사시 미국에게서 전차를 지원받을 수도 있으니)의 문제로 매우 부정적이라 철회를 요청했다고 한다.[[https://blog.naver.com/minjune98/222335057044|#]] 다른 유명 군사전문가도 위와 같은 내용보다는 실제로는 독일과의 협력 및 군수 지원, 그리고 미군과의 작전 연계, 보급 등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 군과 정부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 맞다고 언급했다. 사실 서독은 60년대 [[기민당]] 정권 시절에는 같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차관을 제공하며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70년대 [[사민당]] 정권으로 교체된 후 서독은 동방정책을 추진하며 공산권 국가들과 교류을 강화했고, 이 와중에 북한과도 교류를 하며 서독을 통한 납북 문제 등으로 우리 정부와 다소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군 전력의 핵심인 주력전차를 독일제로 바꾸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미국이 M60 판매 승인을 냈거나 [[크라우스-마파이 베크만]](KMW)와 레오파르트 1 개량형 수준의 전차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면 대한민국 육군은 레오파르트 1 계열의 특징인 방어력 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튀르키예군처럼 2000년대에도 2세대 전차를 2.5세대 ~ 3세대급 수준에 가깝게 개량한 것을 주력으로 굴리면서 3세대나 3.5세대 전차를 도입하는 육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76년 국방부는 미국 육군의 차기 전차인 M1 전차의 개발 및 양산 회사로 선정된 크라이슬러 디펜스사(CDI)를 선정해 개념 설계와 탐색 개발을 미국에서 수행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978년 5월 미국 정부와 한국형 전차(ROKIT)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고 한국형 전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형 전차 사업은 2차 율곡 사업(1982~86)에 포함됐다. 한국형 전차 사업은 미국에서 1981년 4월 대한민국 육군이 요구한 작전 요구 성능(ROC)을 토대로 개념 설계를 마치고 1984년 4월 2대의 전차를 선행시제했다. 1981년 ~ 1984년 사이에 한국형 전차 개념 설계와 탐색 개발을 담당했던 크라이슬러 디펜스사(CDI)는 경영 부진으로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에 매각돼 제너럴 다이내믹스 지상 사업부(GDLS)로 변경이 된다. 이때 대한민국은 한국형 전차에 대한 기술 습득을 위해 현대정공 기술팀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팀을 GDLS 사에 파견해 개발 과정에 참여-기술 이전을 받는 형태로 개발했기 때문에 자체 개발 전차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때문에 미군의 [[M1 에이브람스]]와 유사한 외형이 특징이다. M1 에이브람스를 설계한 크라이슬러에서 M1 에이브람스의 기술과 설계를 바탕으로 국내 ROC를 적용하여 설계했기에 겉모습이 비슷해졌다. M1 초기형의 설계와 M1에 사용된 부품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국군 특유의 피탐지성을 강조하는 교리[* M1은 피탄 후 생존성과 향후 업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으나 K-1은 폭로 면적의 축소 및 한국 지형 적응에 초점을 뒀다.]와 한국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 적합하게 새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엔진(독일제)을 바꾸고 전고를 낮추고 그를 위해 포탑을 바꾸고 [[MBT-70]]의 [[유기압 현가장치]] 기능을 넣는 등 대한민국 국군 요구안에 맞게 설계를 변경했다. 따라서 초기형 M1과 K-1은 같은 개발사에 서로 비슷한 외형 및 주요 사양, 무엇보다도 같은 MBT임에도 내부와 운용법이 상당히 다르다. 결국 M1에 딸린 파생형이라기보다는 개발사가 같으면서 기술적 연관성이 매우 높은 형제기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다. 특히 외형이 비슷해 일반인들, 심지어 미군들도 상당히 헷갈려 하지만 포탑의 형상이 약간 다르고 K-1 계열이 체구가 훨씬 더 작다.[* 특히 포탑이 많이 작다. 사진의 K-1은 궤도를 올리고 있어 커보이는 것이다. 그 바람에, 업그레이드가 수월했던 M1에 비해 K-1은 주포 업그레이드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실제로 105mm 주포를 장비한 K-1의 포탑과 120mm 주포를 장비한 K-1A1의 포탑은 얼핏 같아보이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세밀한 구조도 구조지만 전차 자체 크기가 매우 작은 편에 속하며 특히 포탑이 작아서 120mm 활강포를 장착할 자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M1은 120mm 활강포로 업그레이드할 때 포만 바꾸면 되었지만 K-1은 포탑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K-1A1은 신규생산이고 기존의 K-1은 120mm KM256 활강포 교체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K-1을 '리틀 에이브람스', '베이비 에이브람스'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제원을 보면 M1에 비해 크기가 조금씩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제네럴 다이내믹스와 동시기에 AAI에서 ROKIT으로 제시한 모델이 있다. 800마력 36톤의 경량 소형 차체, 토션바식 현수장치를 사용하고, 포탑은 [[메르카바 전차]]를 닮은 삼각 쐐기형의 포탑으로 극단적인 저피탐성을 추구해서 서방형 T-72를 연상시키는 설계안으로, 승무원은 장전수 포함 4명이었지만 반자동 장전장치로 분당 20발 사격이 가능했으며 K1의 유압식 서스펜션 방식 대신 포탑 상부가 열리면서 주퇴복좌기를 노출시키는 구조로 부각을 확보하는 특이한 설계였으며, 포수 조준경이 열영상이 없는 M60A1 전차 수준이어서 M48이나 M60처럼 AN/VSS-3 적외선 탐조등을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https://www.facebook.com/TheChieftainArmor/posts/679135113575887|출처]]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M1 에이브람스, version=1676, paragraph=2.9.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